Bravobo

Wednesday, September 27, 2006

Beauty is the mystery of life

Beauty is the mystery of life. It is not the eye it is in the mind. In our minds there is awareness of perfection.
We respond to beauty with emotion.
Beauty is an awareness in the mind.
When you think of something that you should do the inner mind says "yes" and you feel elated. We call this inspritation.
For an artist this is the only way. There is no help anywhere. He must listen to his own mind.
Art work is responded to with happy emotions. Work about ideas is responded to with other ideas.


-Agnes Martin: Beauty is the Mystery of Life" and "Journal Excerpts" in Agnes Martin.
New York: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1993

Saturday, September 23, 2006


http://www.kensingtoncottage.com/Spnweel/SPWHEEL.html

Tuesday, September 12, 2006

drawing for drawing machine 2



Friday, September 01, 2006

존듀이-경험으로서의 예술

섬광이 암흑의 세계를 비출 때 대상의 순간적인 인지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인지는 시간 속의 단순한 하나의 점이 아니다. 인지는 길고 느린 성숙의 과정 중에서 최정점이다. 인지는 계속되는 순차적인 시간적 경험이 갑자기 다른것과 단절되어 한순간의 클라이맥스로 나타나는 것이다. 단절시키는 것은 <햄릿Hamlet>을 전후 문맥 없이 단 하나의 행이나 단어로 제한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이다. 그러나 '여백은 침묵이다' 라는 말은, 계속 진행되는 때가 되면 이르게 되는 희곡의 결말로서는 아주 함축성이 있다. 자연 경관의 순간적 지각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발전하는 생활 경험의 모든 과정에서 예시되는 공간과 시간의 조직화에 포함된 것, 이것을 명료하게 하는 기술이 바로 예술의 형식이다. 50

지각이란 눈앞의 어떤 사물을 그것과 무관한 과거의 어떤 사물을 통해 식별하는 것이 아니다. 인식에서 과거는 현재 속으로 들어가 혀재의 내용을 확장하고 심화하는 것이다. 외부적인 시간의 연속성이 생명의 질서와 경험의 조직화로 변화한다는 것이 여기서 예증 된다. 동일화라는 것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스쳐자는 것이다. 혹은 동일화는 어떤 스쳐가는 순간만을 정의하며, 단지 안에 가득 채워져 있기만 한 경험 속에서 이른바 사각 지대를 적시한다. 모일 모시의 생활 과정이 단순히 계소되는 '이러저러한' 상황, 사건 혹은 사물로 불리지 않을 수 없는 범위는 한 생명, 즉 의식적 경험의 정지를 시사하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분리된 어떤 형식으로 구체화된 연속성이야 말로 의식적 경험의 본질을 이룬다. 51

존듀이-경험으로서의 예술

생명체는 과거에 이루어진 것 위에서 살고자 하지 않고, 현재를 알려주는 것으로서 과거의 성공을 이용한다. 모든 생생한 경험의 품부함은 산타야나 George Santayana 가 즐겨 말하는 '고요한 반향 hushed reverberation' 덕분이다.

온전히 살아있는 자에게 미래란 불길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약속이다. 미래는 일종의 후광처럼 현재를 감싸고 있다. 미래는 지금 여기서 한 소유물로서 느껴지는 가능들로 이루어져 있다. 진실한 삶 속에서 온갖 사물들이 오버랩되고 융합된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가 가져다줄 것에 대해 너무 자주 우려하며, 분열괸다. 과도하게 염려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현재를 즐기지 않는다. 현재에 없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현재를 과거나 미레에 굴복시키기 때문에, 어떤 경험의 행복한 시기는, 경험이 과거의 추억과 미래의 예측에 몰입함으로써 이제 완벽해져서 미적인 이상을 이루게 된다. 과거로 인해 괴로워하는 일이 더 이상 없게 되고 미래의 예측이 교린되지 않을때만 사람은 자기의 외계와 오전히 결합되며, 따라서 온전히 살아 있게 된다. 예술은 과거가 현재를 강화해주고 미래가 현재의 것을 가속하는 계기를 아주 강렬하게 축원한다. 40

예술이나 미적 지각을 경험과 결부시키는 것이 그것들의 중요성과 위엄의 저하를 의미한다는 가정으로 치닫는 것은 무지의 소치에 불과하다. 경험이 진실로 경험인 한 경험은 활력으로 고양되는 것이다. 경험은 개인적인 감정과 감각 안에 갇혀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세계와의 활발하고 민첩한 교제를 의미한다. 그리하여 최고의 경험은 자아와, 대상과 사건의 세계 사이의 완전한 상호 침투를 의미한다. 그것은 변덕과 무질서에 빠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정체가 아닌, 율동적이고 발전적인 안정의 유일한 증거를 제공한다. 경험은 한 생명체가 사물의 세계 내에서 투쟁하고 성취함으로써 실현하는 것으로 예술의 맹아이다. 42

존듀이-경험으로서의 예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술을 다른 경험 양식에서 단절시켜 예술만의 영역으로 밀어 넣음으로서 예술과 그 감상을 격리시키는 이론들은 예술이라는 것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외적 조건에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제도와 생활 관습에 깊이 착근되어 있는 이 조건들은 매우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까닭에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이론가는 그 조건들이 사물의 본성에 착근해 있다고 상정하는 것이다. 28

다행스럽게도 경험 내의 미적인 것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이론은 근본적인 형식의 경험에서 시작할 때 상세한 설명에 몰두할 필요가 없다. 폭넓은 개괄로도 충분하다.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은, 생명체가 어떤 환경 속에서 영위되는데, 단순히 환경 속에서만 영위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 때문에 영위되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영위된다는 것이다. 그 어떤 생명체도 단지 피부 속에서만 사는 것은 아니다. 생명체의 피하기관들은 신체 밖에 있는 것과 접속하는 수단이며, 살기 위해서는 화해하고 방어하고 정복함으로써 외계에 자신을 적응 시켜야 한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매순간 외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또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항상 환경 안에서 무언가에 의존해야한다. 살아있는 존재의 생애와 운명은 환경과의 상호교류에 의해 결정된다. 외적으로가 아니라 가장 내밀하게 말이다. 32-33

자연에서는 생명의 수준 이햐의 것에서조차 단순한 유전이나 변화 이상의 그 무엇이 존재한다. 비록 움직이고 있다 하더라도 안정된 평형이 한 번 이루어질 때마다 매번 형식이 생격난다. 변화들은 서로 결합하고 지탱한다. 이러한 결합이 존재하는 데는 항상 지속이 있다. 절서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힘들이 서로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상호 작용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다. 질서는 활력적이어서 그것 자체는 발전한다. 질서는 그 균형 잡힌 운동 속에 다양한 변화를 포함하게 된다. 34-45

자기와 환경과의 통합의 상실, 그리고 일치의 회복이 반복되는 과정은 인간 안에서 지속될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의식적이게 된다. 그 율동의 조건들은 사람이 목적을 형성하는 내용이 된다. 정서는 현재의 혹은 눈앞에 다친 파국이 의식에 나타나는 기호이다. 그리하여 부조화는 반성을 환기하는 경우가 된다.융합 회복 욕구는 단순한 정서를 조화이 실현이라는 조건으로서의 대상들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변화시킨다. 그 조화의 실현으로 반성의 내용은 대상들의 의미로서의 대상들 안에 융합된다. 예술가는 그 결합이 행해지는 경험의 국면을 유난히 갈망하기 때문에 저항과 긴장의 계기를 기피하지 않는다. 그는 저항과 긴장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통일적이고 전체적인 어떤 경험을 생생하게 의식시키는 사능성 때문에 오히려 그것들에 몰두한다. 35-36

존듀이-경험으로서의 예술

예술을 멀리 떨어진 고급한 것으로 여기는 생각이 만연해 있어, 어떤 사람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그 미적 성질 때문에 격의 없는 여흥을 즐긴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기보다는 오히려 불쾌해 할 것이다. 오늘날 보통 사람들에게 많은 활력을 주고있는 여러 예술은 사실 사람들이 예술로 여기지 않는 것들이기 쉽다. 예를 들면, 영화, 재즈, 연재만화, 그리고 사랑의 보금자리나 살인, 강도 사건에 대한 신문 기사등이다. 보통 사람들이 예술로 알고있는 그 무엇이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갇히게 될때, 그 자체로 향유할 만한 경험을 향한 엄청난 충동이 일상 환경이 제공하는 것가 같은 출구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예술의 미술관적 개념에 저하하는 사람이 많은데, 여전히 그들은 그 개념을 이야기하는 원인인 오류를 공유하고 잇다. 일반적 개념은 예술을 일상 경험의 대상과 사태로부터 분리시키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선별된 뛰어난 대상들이 보통이 직업인이 만들어낸 산물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시대는 예술에 대한 감상이 가장 충만하고 예민한 시대이다. 서로간의 거리 때문에 교양있는 사람들에게 순수 예술작품으로 인정된 대상들이 일반 대중들에게는 생기가 없어 보일때, 미적 갈망은 쉽고 저속한 것을 추구하게 된다. -P.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