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속의 양(羊)]
다락방은 삶의 표본실이다. 다락방은, 우리의 내면세계인 순수 지속(持續)1)의 세계, 즉 기억의 먼지를 덮고 있는 물건들의 표본실이다. 다락방 속의 표본들은 어떠한 이름도 설명도 없으며, 규칙이 지배하는 일목요연한 보여주기를 거부한다. 그 속의 표본들은 무작위적인 동시에 무의식적인 상태이며, 따라서 덮여 지각되지 않는 대상들이다.2) 하지만, 그 안에서 기억의 한 순간을 간직한 표본(물건)들과의 우연한 조우는 순식간에 추억을 되살리며, 또 다른 현재 삶의 순간을 창조한다. 이것은 표본실의 유리병 속 유기체들의 전체 또는 부분들을 보는 유년의 탐구적 즐거움을 넘어, 쟝께레비츠가 ‘유기체적 전체성’이라 표현한 베르그송의 생성철학과 닮는다. 그것은 무의식으로 부유하던 기억의 한 가닥이, 삶의 표본이라는 다락방 속의 방치된 물건들과 만남으로써, 지각(현재)을 통해 이전 기억과 다른 운동과 기억을 생성시키는 것이다. 즉, 우연한 이질적 체험의 세계3)가 다락방 안에 있는 것이며, 그 속에서 지속으로서의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다.
지속의 아름다운 화석들을 발견하는 것은 공간에 의해 공간 가운데서 발견된다.4) 우리들의 많은 추억들이 집의 덕택으로 그 안에 거처를 잡아 간직되어 있고, 지하실, 다락방, 복도와 많은 구석들로 인해 우리들의 추억들은 더욱 특별한 은신처를 가지게 된다. 특히, 다락방은 우리들이 스스로를 응집시켜 웅크리고 들어앉고 싶은 공간으로서의 구석5)이며, 표본의 아득한 유리병 속에서 지속으로서의 자아를 되돌아보는 곳이다. 여기서 다락방은 무의식적 공포와 두려움의 지하실에 반하는 지붕 밑 방을 의미하지 않으며, 구석으로서의 공간이자 몽상가의 공간을 의미한다. 구석으로서의 다락방은 은둔의 반상자이며, 존재의 응집에 대한 반동으로 인해 자기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데카르트의 ‘난로 방’이다. 다락방은 몽상가의 집이며, 그 안에서 몽상가는 먼지에 싸인 물건들(내 것 혹은 누군가의 것이었을)의 추억으로 기억을 되살리고, 그 경험으로 또 다른 기억을 생성시킨다. 그것은 몽상을 했던 장소들이 새로운 몽상 가운데 스스로 복원되기 때문이며, 그 장소 안의 물건들의 추억이 몽상처럼 되살아 나기 때문이다.6)
다락방 속의 물건들은 기억의 먼지에 싸여있다. 그 삶의 표본들 위에 소복이 쌓인먼지는 추억의 표본들이 풍기는 포름알데히드의 향이다. 공간이라는 경계 안에서 먼지는 죽은 벌레의 파편이나 사람의 피부에서 떨어진 각질, 섬유 보푸라기와 같은 갖가지 불쾌한 물질들로 이루어진 혼합물이다. 그리고 길고 긴 세월을 거쳐 오는 동안, 사람들은 먼지를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존재라고 생각해 왔고, 이러한 생각은 결국 저급한 어떤 것을 가리키는 가장 일반적인 은유였다.7) 또한 먼지는 유기체의 삶의 물리적 최종 목적지이자 죽음의 물리적 실체이다. 결국 먼지는 죽은 몸의 파편들이며, 어디엔가 내려 앉은 먼지들은 죽음의 망토이다. 먼지의 망토 속으로 들어간 물건들은 추억의 표본이 되고, 그 먼지의 냄새는 포름알데히드의 향이 된다.
먼지 쌓인 추억의 표본들은 노란 유리병 속의 사체들처럼, 현재와의 우연한 조우 후에도 생명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자아의 지속 안에서 그 표본들은 새로운 과거와 미래로서 재 탄생한다. 추억의 표본들은, 포름알데히드의 마법으로 인해, 멈춰버린 표본 유리병 속의 유기체들처럼 망상의 날개에 영원한 생명을 준다.
데미안 헐스트(Damien Hirst)는 표본의 예술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관람객들에게 다락방의 매캐한 먼지 냄새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표본 속 동물들은 정지된 시간이며, 누군가의 기억에 있을 하나의 먼지 덮인 이미지로 대체된다. 그의 표본들은 전시장의 바닥에 놓여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마치 다락방 속의 물건들처럼 무심한 무의식의 세상에서 부유하며, 어떤 순간 기억의 매개체로 혹은 몽상의 날개로 다시 태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 하다.
표본의 유리관은 그 속의 동물들을 완전한 상품으로 만든다. 헐스트의 작업 방식과 전직 약사라는 직업적 배경의 특성은, 생명에 대한 객관적 접근과 현대 사회에 있어 과학과 자본주의의 상호관계를 극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의 상품(표본)들은 죽음을 상품화하면서 인간의 내면에 깃든 두려움을 무감각하게 말소시켜버린다. 하지만 상품으로서의 죽음은 다락방 속의 물건(삶의 표본)들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 주변의 누군가의 죽음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 문신으로 남지 않는다. 그러한 삶의 표본들은 우리의 기억 저 편에서 언제일지 모르는 현재와의 만남을 막연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헐스트의 양(羊)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그가 공장에서 만든 표본의 유리관 속 동물들은 더 이상 바다를 유영하지도, 들판에서 풀을 뜯지도 않는다. 표본의 유리관들은 전시관의 바닥에 놓여,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어버린 다락방 속의 물건들처럼, 포름알데히드 바다 속에서 우리를 몽상으로 이끈다. 표본은 죽음의 기억이며, 다락방은 추억의 표본들을 간직한다. 다락방 속의 물건들이 추억을 간직하고 몽상을 불러 또 다른 몽상의 공간 속으로 우리를 이끌 듯, 포름알데히드 속의 양은, 뛰어 놀던 들판과 하늘을 추억하며, 결코 역겨워 할 수 없는 죽음의 눈빛으로 우리를 몽상의 공간으로 이끈다.///
[20060331_marineboy_심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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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형효, 베르그송의 철학, 민음사, 1991, p.49, 84.
순수한 내면적 정신세계의 본질이 지속이요 기억이다. (p.84)기억에서 과거는 현재로 언제나 계속해서 흐르고 있기에, 그런 기억의 흐름을 베르그송은 ‘순수 지속’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기억으로서의 ‘순수 지속’이 마치 짜집기를 하듯이 그렇게 조각조각 단편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어나는 눈공처럼 모든 것이 계속적으로 유기체화하는 것임을 우리는 또한 한다.
2) H. 베르그송, 물질과 기억, 홍경실 역, 교보문고, 1991. p.159.
지각되지 않은 물질적 대상, 이미지화되지 않은 이미지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정신상태이다.
3) 김형효, op. cit, p.97
4) 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곽광수 역, 동문선, 2003, p.84
5) Ibid, pp.254-5.
우리의 성찰의 출발점은 다음과 같다: 집에 있는 구석, 방 안의 벽구석은 어떤 것이나, 우리들이 스스로를 응집시켜 웅크리고 들어앉고 싶은 구석진 구석은 어떤 것이나, 우리들의 상상력에 대해서는 하나의 고독, 즉 하나의 방의 배아, 하나의 집의 배아가 된다……구석은 우리들에게 존재의 최초의 가치의 하나인 부동성을 확보해주는 은신처이다. 그것은 나의 부동성이 자리잡을 수 있는 확실한 장소, 가까운 장소이다. 구석은 일종의 반상자-반은 벽이고 반은 문인-이다.
6) H. 베르그송, op. cit, p.80
7) 조지프 어메이토, 먼지, 강현석 역, 이소출판사, 2001, pp.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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